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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도 없이 엄마 손에 숨진 8세딸, 마지막 말은 “엄마 사랑해”

by 다음클럽 2021. 1. 20.

 

 

친모 백씨가 딸을 해하기 전날 친부 A씨에게 보낸 사진. B양은 A4 용지에 '사랑해요 엄마, 아빠'라고 적었다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장례식장. 빈소에는 사흘 전 숨진 A(46)씨의 영정과 8세 앳된 얼굴의 여아 B양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A씨는 B양의 친부다. 지난 8일 A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친모 백모(44)씨가 딸의 호흡을 막아 숨지게 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간 집에 시신을 방치하다 15일 오후 3시 27분이 돼서야 119에 “구급차를 보내 달라. 아이가 죽었다”고 신고했다. 신고 7분 만에 구급대가 도착했다. 경찰은 잠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집에서 새어 나와 강제로 문 손잡이를 부수고 들어갔다.

백씨는 현장에서 경찰에 “내가 아이를 죽였다”고 진술했다. 숨진 아이는 침대 위에 눕혀져 부패가 진행되던 상태였다. 백씨는 이불과 옷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몸에는 수차례 자해한 흔적이 있었다. 백씨는 병원으로 후송됐다가 살인 혐의로 긴급 구속됐다. 별거 중이던 친부 A씨는 이날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고 밤 10시 30분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선지 2시간 만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딸에 대한 죄책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OO(동생)야! 미안하다! 아이를 혼자 보낼 수도 없고, 딸 없이 살 자신도 없어’라는 세 문장이 유서처럼 남겨져 있었다. 세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딸 끔찍히 아꼈지만…”장례도 같이 못 치를 뻔”

A씨의 유족과 동창 등에 따르면, 택배 기사로 일하는 A씨는 매 주말마다 딸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딸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딸을 소개하며 함께 밥을 먹거나, 택배 차를 타고 나들이도 다녔다. 실제 본지가 확인한 A씨의 휴대전화 앨범 속엔 딸과 유원지, 공원 등에서 찍은 사진 수십장이 남아 있었다. 작년 초에는 딸을 위해 휴대전화도 사줬다. A씨는 지난 8일 이후 딸과 연락이 되지 않자 주변에 불안함을 호소했고, 친모 백씨는 딸의 안부를 묻는 A씨에게 “딸이 내 고향집에 갔다”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18일 오후 인천의 한 장례식장에 친모 손에 숨진 8세 여아의 영정(왼쪽)과 친부 A(46)씨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조유미 기자

 

◇'출생 신고' 원했지만…”아이 엄마 알 수 없어야 가능”

백씨와 A씨는 딸의 출생 신고를 두고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작년 6월부터 별거를 시작한 이유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니 출생 신고를 하라”는 A씨 요구를 백씨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게 A씨 유족 측 얘기다. 백씨는 전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낳게 되자, 법적 문제 때문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관계등록법상 미혼모는 원하면 바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혼부는 아이 어머니의 성명이나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 한해 가정법원의 확인을 거쳐 출생 신고가 가능하다.

A씨 유족에 따르면, A씨는 딸의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경찰·동사무소·교육청 등에 문의했지만 “친모가 수개월 연락이 되지 않아, 딸이 고아원에 가는 정도의 상황이 돼야 친부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백씨에게 “딸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고향에 가 있는 등의 방법으로 수개월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출생 신고를 하자”고 했지만 백씨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딸을 살ㅎ 친모 백씨가 B양과 함께 살던 집. /신지인 기자

실제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을 보면, A씨는 지난해 10월 22일 생활비를 달라는 백씨에게 “내일까지 출생 신고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보내라. 등본이 됐든, 주민번호가 됐든”이라며 “아이 출생신고 한다고 받아간 돈이 3번째다. 하라는 출생 신고는 뒷전이냐”고 했다.

결국 8세 된 딸은 서류상 태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 됐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각 시·도 교육청이 취학 아동 대상으로 보내는 취학 통지서도 발송되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백씨는 경찰 조사에서 “법적 문제로 딸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없었고 올해 3월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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